“철도와 지리, 왜 어떤 도시에는 역이 없을까?”라는 질문은 단순히 교통망의 불균형을 넘어 한국의 지리와 역사, 그리고 도시의 성장 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철도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도시의 흥망성쇠를 가른 결정적 요소였고 어떤 도시는 철도의 중심이 되어 성장한 반면 어떤 도시는 선로 밖에 머물며 변화를 놓치기도 했다.
1. 철도망의 탄생과 지리적 제약
한국 철도의 출발점은 일제강점기였다. 1899년 경인선(인천–노량진)이 개통되며 철도의 시대가 열렸고 이후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등 주요 간선 철도가 빠르게 건설되었다. 하지만 이 철도들은 단순히 교통 수요를 고려해 건설된 것이 아니었다. 일제는 군사적 목적과 자원 수탈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따라서 노선은 전략적 거점과 항만, 광산지대를 연결하는 형태로 짜였다. 이 과정에서 지리적 조건은 크게 작용했다.
예를 들어 산악 지형이 많은 강원도는 철도 건설에 불리했다. 철로는 가능한 한 완만한 경사와 곧은 길을 선호하기 때문에,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은 막대한 공사비를 요구했다. 결국 강원도의 많은 도시들은 철도망에서 소외되었고 대신 일부 탄광 지역(태백, 정선 등)만 선별적으로 연결되었다. 이는 강원도의 도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충청도 내륙의 일부 도시들 역시 교통망에서 소외되었다. 예컨대 충북의 제천이나 충주의 경우 산맥과 강이 가로막아 철도 연결이 늦었고 그 결과 교통 요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도시보다 성장이 더딘 편이었다.
즉, 철도는 단순히 필요에 의해 깔린 것이 아니라 지리적 조건과 당시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맞물려 형성된 결과물이었다. 따라서 어떤 도시에는 철도가 연결되지 못했고 이는 곧 도시의 성장 기회를 크게 제약하는 요인이 되었다.
2. 역이 없는 도시가 된 이유, 교통망과 경제의 불균형
“철도와 지리, 왜 어떤 도시에는 역이 없을까?”라는 물음의 핵심에는 교통망의 불균형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철도가 놓이는 과정에서 어떤 도시는 역을 얻으며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로 성장한 반면 어떤 도시는 그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기도 화성시다. 현재 화성은 인구 100만 명을 넘어서는 거대 도시로 성장했지만 정작 시 중심부에는 KTX나 일반선 철도역이 없다. 이는 과거 화성이 농촌 위주의 지역이었고 철도 건설 당시 도시화 수요가 크지 않았던 탓이다. 철도망은 인근의 수원, 오산, 평택 등지를 관통했지만 화성은 배제되었다. 결과적으로 화성은 급격히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철도 교통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 경상남도 사천시를 들 수 있다. 사천은 항공산업과 해상 교통의 중심지임에도 불구하고 철도역이 없다. 인근 진주에 경전선이 지나가지만 사천 자체는 철도망에서 소외되었다. 이는 철도가 처음 건설될 당시 항만과 광산 중심의 노선 계획이 우선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이 없는 도시는 단순히 인구가 적어서가 아니라 당시의 노선 설계가 특정 산업·군사적 필요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역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장기적으로 도시의 발전과 산업 구조에 큰 제약을 가져왔다. 교통망이 곧 경제력이라는 점에서 역이 없는 도시들은 성장 속도에서 다른 도시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3. 철도가 만든 도시와 역이 없는 도시의 미래
철도는 도시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요소였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지나는 대전, 대구, 광주는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거대한 도시로 성장했다. 반면 철도가 비껴간 도시들은 교통 요지로서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행정 중심지나 산업 클러스터로 자리 잡는 데 한계를 겪었다.
하지만 “철도와 지리, 왜 어떤 도시에는 역이 없을까?”라는 질문은 이제 과거형이 되어가고 있다. 현대의 교통망은 철도만이 아니라 고속도로, 고속철도, 공항까지 포함되며 역이 없는 도시들도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예컨대 화성시는 철도역은 없지만, 광역버스와 고속도로망 덕분에 서울과 연결되며 급성장했고, 사천시는 공항과 항만을 기반으로 독자적 교통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교통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지방 KTX 분기역, 광역철도망 확충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과거 철도망에서 소외된 도시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철도의 상징적 의미는 여전히 크다. 철도역이 있다는 것은 단순한 교통 거점이 아니라 도시가 국가 교통 체계 안에서 중심으로 인정받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이 없는 도시는 여전히 주민들의 불편과 지역 균형 발전의 과제를 안고 있다.
결국 역이 있는 도시와 없는 도시의 차이는 한국 도시 지리의 불균형을 보여주는 단면이며 이는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철도와 지리, 왜 어떤 도시에는 역이 없을까?”라는 질문은 단순히 교통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리적 제약, 역사적 선택, 경제적 필요가 얽혀 만들어진 결과이자 도시 발전의 불평등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철도망에서 소외된 도시들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균형 발전을 이루어갈지, 그리고 철도가 여전히 도시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